'가짜 경찰서, 가짜 은행, 가짜 공안 제복'...캄보디아 범죄 단지 내부를 가다
- 기자, 조나단 헤드
- 기자, 동남아시아 특파원
- 기자, 룰루 루오
- 기자, 타냐랏 독손
- Reporting from, 캄보디아 오 스마치
- 읽는 시간: 8 분
'로열 힐 카지노' 뒤편의 6층 건물,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문마다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떤 방에는 베트남 은행을 완벽하게 재현한 모형이 있고, 또 다른 방에는 호주 경찰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한쪽 구석에는 중국 공안의 제복 셔츠가 걸려 있다.
벽에는 중국어로 '돈은 어디서나 온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눈에 띄고, 바닥에는 버려진 위조 100달러 지폐들이 널려 있다.
캄보디아 국경 지대 오 스마치에 위치한 이곳은 한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범죄 단지였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수천 명이 엄격한 통제와 감시 아래 이곳에서 일하며 전 세계 수많은 피해자들의 돈을 가로챘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태국 공군은 캄보디아와 벌어진 짧은 국경 분쟁 중 이곳을 폭격했다. 태국 측은 해당 카지노에서 캄보디아 드론이 발사됐다고 주장했다.
폭격 당시 이곳에서 일하던 이들은 먹다 남은 국수 그릇과 반쯤 마신 콜라 캔, 지독한 냄새를 남겨둔 채 도망쳤다.
오늘날 로열 힐은 이곳을 점령한 태국 군인들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다. 창문들은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났고, 벽과 지붕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으며, 모든 표면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사진 출처, Lulu Luo/BBC
태국 군부는 캄보디아의 사기 산업이 얼마나 거대한지 보여주고 싶다며 취재진을 이곳으로 데려갔다. 또한 이 재앙을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는 12월 태국의 캄보디아 공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활용된다.
캄보디아 정부는 태국의 자국 영토 점령에 항의했지만, 태국 측은 양측이 전투가 중단된 시점의 위치에 병력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휴전에 합의했다고 주장한다.
로열 힐은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태국군이 점거하기 전까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랍다.
길 건너편에 자리한 '오 스마치 카지노' 단지의 경우, 내부에서 사기를 저지르던 이들이 학대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며 도망쳤다는 뉴스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오 스마치 카지노 소유주인 리 용 팟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중 하나로, 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집권 훈 가문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리는 인신매매 및 온라인 사기 연루 의혹으로 미국 등 여러 국가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다.
반면 로열 힐의 소유주인 림 헹에 대해서는 비교적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는 리 용 팟처럼 훈 센 전 총리로부터 '니악 옥냐'라는 경칭를 받았지만, 국제 제재 명단에는 단 한 번도 이름이 오른 적 없다. 최소 50만달러를 기부해야 '옥냐'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림은 이를 통해 수백 명 규모에 불과한 캄보디아 엘리트 집단에 속하게 됐다.
림에 대해 알려진 몇 안 되는 특이한 점이라면, 태국과 인접한 북부 국경 지역에 자리한 또 다른 그의 카지노 근처에 있는, 악명 높은 크메르루주 지도자 폴 포트의 화장터를 참배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Lulu Luo/BBC
캄보디아의 재벌 대부분은 지난 1991년 캄보디아 내전 종식 이후 집권 가문과의 인맥을 통해 막대한 토지를 매입하며 부를 축적했다.
처음에는 불법 벌목과 농장으로 이익을 챙겼고, 이후에는 중국 투자자들이 주도한 도시 부동산 투기 열풍 속에서 부를 쌓았다.
하지만 오 스마치와 같은 국경 지역에서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사업은 카지노였다. 태국, 중국 등 인접 국가의 도박 금지 조치를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30년간 카지노 허가증 약 200개를 발급했다.
이러한 카지노는 중국 범죄 조직을 끌어들였고, 중국 범죄 조직은 카지노에서 수익성 높은 온라인 도박 사업도 함께 운영했다.
그러던 2019년, 중국의 압력으로 훈 센 전 총리는 온라인 도박 금지를 선언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자 이러한 범죄 조직들은 온라인 사기로 눈을 돌렸고, 높은 급여를 내세워 전 세계 청년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는 자신들이 사기에 가담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무직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일자리를 얻었다고 믿고 온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설에 도착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얼마나 가혹한 환경에 놓이게 될지 알고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취재진은 로열 힐의 잔해 속에서 중국어로 된 문서 몇 장을 발견했다.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우선 하루 안에 대상자(온라인에서 관계를 맺기 시작한 잠재적 피해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5대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3일 동안 아무런 대상자도 확보하지 못한 한 노동자는 최소 10대를 맞아야 했다. 동료와 잡담을 나누거나, 피해자의 신뢰를 얻고자 사진과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에도 유사한 처벌을 받았다.

사진 출처, Jonathan Head/ BBC
지난해 8월에 로열 힐로 모집돼 갔다는 우간다 출신 청년 윌슨은 "어떤 사람들은 전기 고문을 당했고, 어떤 사람들은 '검은 방'에 갇히기도 했다. 워낙 끔찍한 고문이 벌어진 곳이라 '검은 방'이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말레이시아에서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될 줄 알았다.
취재진은 현재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자선 단체의 보호 아래 고국 우간다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윌슨에 따르면 중국인 상사들이 정해준 대본에 따라 하루 15~16시간씩 강제로 일해야 했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목소리와 외모도 바꿀 수 있었다.
"한 37세 정도로 남편감을 원하는 부유한 여성을 연기했습니다. 나이 든 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본에는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뒤흔드는 지점이 나와 있습니다. 우선 신뢰를 쌓고, 이후 이들에게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태국 측이 폭격을 가하는 와중에도 계속 사기를 저질러야 했다고 토로했다.
"매일 폭격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릴 때마다 밖으로 도망쳤습니다. 정말 무서웠지만, 다시 들어와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취재진은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고 "투자"에 대한 확신을 주고자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대본들도 발견했다. 아울러 지각 시 벌금이 부과되는 등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담은 문서도 있었다.
게다가 화장실에 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직원 외출 등록 양식'이라는 문서에는 태국 폭격 전 며칠 동안 직원들이 화장실에 간 횟수와 시간까지 기록돼 있었다.

사진 출처, Lulu Luo/BBC
사기 행각 자체는 어떨까. 브라질 경찰서처럼 꾸며진 방 옆에는 방음용 폼으로 둘러싸인 부스들이 줄지어 설치돼 있었다. 책상 위에는 포르투갈어로 된 손 글씨 메모가 놓여 있었는데, 피해자들을 잘 속이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상파울루 경찰에서 발부된 것처럼 보이는 가짜 소환장도 있었는데, 돈세탁 혐의로 기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피해자들을 협박해 자금 이체를 유도하거나, 계좌 정보를 빼돌리는 데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수년간 캄보디아 정부는 사기 산업 및 관련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커지는 우려를 외면해왔다.
2025년 미국 국무부는 인신매매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 정부가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사기 조직 운영자나 소유주로 의심되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기소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2024년 9월 미국이 사기 및 강제 노동 연루 혐의로 리 용 팟을 제재 명단에 올리자, 그가 고위직으로 있는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은 이를 주권 침해라며 제재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Jonathan Head/BBC
하지만 올해 들어 캄보디아 정부는 미국, 중국 및 다른 국가들의 압박이 이어지자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캄보디아 경찰이 범죄 단지로 의심되는 수십 곳을 급습했으며, 훈 마넷 현 총리는 사기 산업이 자국의 경제와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4월 말까지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극적인 조치는 올해 1월로, 지난해 미국과 영국이 광범위한 사기로 자금을 조달하는 거대한 기업 네트워크를 운영했다며 제재 대상에 올린 사업가 천 즈를 체포해 중국에 넘겼다.
중국 출신인 천 즈는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하고, 훈 센 전 총리의 개인 고문으로서 캄보디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가 운영하던 '프린스 그룹'은 국영 은행, 항공사, 광범위한 부동산 개발 사업을 거느렸다.
수년 동안 그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으나, 중국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끌려 나와 복면을 쓰고 수갑이 채워진 모습이 공개됐다.
그는 현재 국제 도박 및 사기 조직 운영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굴욕적인 몰락은 이 사기 산업의 주요 인물들에게 캄보디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캄보디아 당국은 최근 사기로 얻은 수익을 세탁한 혐의를 받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 업체 '후이온 페이'의 리 슝 회장 또한 중국으로 송환했다.

사진 출처, Prince Holding Group
현재 이러한 사기 범죄 단지 상당수는 텅 빈 상태다. 현지 경찰은 1만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윌슨처럼 여전히 귀국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이제 사기 행위가 완전히 근절됐다는 캄보디아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이러한 사기 범죄 단지 급습은 두더지 잡기 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 노동자들을 눈에 띄지 않는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일은 어렵지 않으며, 실제로 노동자 수천 명이 캄보디아에 그대로 남기로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천 즈를 제외하면, 카지노 뒤에서 사기 범죄 단지를 운영했다는 혐의를 받는 거물급 인사 중 몰락한 이들은 없다. 리 용 팟은 물론 트라이 핍, 콕 안 모두 해외 제재 대상이지만, 여전히 캄보디아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 용 팟과 콕 안 상원의원은 캄보디아 정부가 사기 범죄 가담자들을 엄벌하겠다는 내용의 새로운 법안 투표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로열 힐을 건설한 림 헹의 경우, 태국군이 국경을 넘어 그의 카지노를 점령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어떤 사기 사건 보도나 조사에서도 이름이 거론된 적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