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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이제 어머니가 북송될까 두렵다
- 기자, 로라 비커
- 기자, 중국 특파원
- 기자, 이윤녕
- 읽는 시간: 7 분
2020년 크리스마스이브, 핸드폰이 울렸을 때 금성은 긴장한 채 전화를 받았다.
1년 전 그는 국제적인 비밀 네트워크와 브로커들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서 한국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했다.
잠시 뒤, 스피커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성아, 금성아, 내 얼굴 보이니?"
당시 10대였던 금성은 울먹이는 어머니 은희의 목소리를 듣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고 아프지 않아." 금성은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밀려온 안도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야."
금성은 이제 자신이 어머니보다 키가 더 크다며 자랑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들어 얼굴에 난 여드름을 보여주며 어머니를 웃게 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들고 서울의 새 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집이 3층이에요. 진짜 커요!" 금성이 말했다. "피아노도 있어요."
"와!" 어머니가 감탄했다.
금성은 15살까지 중국 국경 인근 북한의 한 마을에서 어머니와 살았다. 그는 당시 삶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며 그저 매우 힘들었다고 전했다.
"엄마가 힘든 일을 하면 제가 도왔어요. 가끔 엄마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하면 같이 울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렇게 살았어요."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그 삶에서 벗어나려 했다.
금성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9년 6월,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압록강 강가였다.
북중 국경은 높은 철책과 전기 울타리, 수백 미터마다 설치된 초소로 삼엄하게 경비된다.
두 사람이 함께 강을 건너 중국으로 안전하게 넘어온 뒤, 어머니는 자신이 어떤 희생을 했는지 털어놓았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을 탈출하려는 수만 명의 여성들은 중국 남성에게 신부로 팔려가야 했다. 은희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가로 브로커는 금성이 수많은 검문소와 감시, 보안을 피해 약 4000km를 이동해 중국을 넘어 동남아 제3국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3만 명의 북한 주민이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향하는 위험한 여정을 감행했다.
하지만 붙잡히면 고문, 강제노동, 성폭력, 심지어 처형에까지 이르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인권단체들은 말한다. 북한 정권은 탈북자를 국가의 적으로 간주한다.
금성은 어머니와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북중 국경을 순찰하는 군인들에게 들키기 전에 신속히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달간의 고된 여정 끝에 금성은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다.
금성과 어머니가 헤어진 지 6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은희는 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은희는 중국을 떠나 금성에게 가려다 붙잡혀 현재 중국의 교도소에 있다. 금성은 어머니가 북한으로 송환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2023년 10월 북송된 여성 두 명이 처형됐다는 보고를 언급했다. 인권단체들은 그 이후 최대 1000명이 강제로 북송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성은 어머니를 돕기 위해 중국 정부에 호소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고 있다.
"엄마가 그냥 평범하게 살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BBC의 질의에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법치국가"라고 답했다.
"불법 입국자는 난민이 아니다. 중국은 책임있는 태도를 유지하며 국내법과 국제법을 준수하고,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왔다"고 입장을 밝혔다.
금성은 중국에서 어머니를 면회하려 했으나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2020년 12월의 통화에서 은희는 "네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힘든 탈북 여정을 알고 있었기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전했다.
금성은 탈출 과정에서 결핵으로 추정되는 증세로 쓰러지기도 했다.
"너무 어지러워 서 있을 수도 없었어요. (동남아 제 3국으로) 국경을 넘었을 때 어떤 분들이 절 업어서 데려갔어요."
한국 정부는 북한에서 온 주민을 헌법상 자국민으로 간주해 정착 지원을 제공한다.
금성은 서울의 정착지원시설 하나원에서 3개월간 지낸 뒤 위탁가정에 배정돼 학교에 다녔다.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아니?" 은희가 물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2019년 아들과 헤어진 뒤, 은희는 자신이 팔려간 중국 동북 지역에서 남편과 함께 살았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은희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재회를 꿈꿨다.
그는 아들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고, 북한 탈북민 사이에서 인기 있던 중국의 한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등 여러 차례 금성을 차증려 했다.
서울에서 금성의 친구가 우연히 방송을 듣고, 금성의 이야기인 것을 알아 차렸다.
몇 차례 전화 끝에 금성은 어머니의 위챗 번호를 알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은희는 아들이 잘 먹고 잘 자는지 걱정했고, 길어진 머리카락을 농담 삼아 놀리기도 했다.
그러다 2024년 12월, 은희는 큰 결심을 했다. 5년 만에 아들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금성은 혹시 어머니가 체포될까 두려워 신중히 행동해 달라고 당부하며 계획을 만류했다.
하지만 한 달 반 동안 어머니의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마침내 두려워하던 소식을 듣게 됐다.
2025년 1월 2일, 은희는 미얀마 국경 인근 중국 남부에서 붙잡혔고, 이후 중국 동북 지역의 북한 주민 수감시설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한국에 도착하는 탈북민 수가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북한과 중국은 1420km 길이의 국경에 이중 철책을 설치하고 감시를 강화했다.
2025년 한국에 도착한 탈북자는 223명. 2020년 이전에는 매년 약 1000명이 탈출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이후에는 더 많은 인원이 국경을 넘었다. 당시 인권단체들은 이를 조용한 탈출이라고 표현했다.
은희처럼 오늘날 중국에 도착하는 여성 상당수는 비공식 결혼 형태로 팔려간다.
어떤 여성들은 가족에게 돈을 보내거나 언젠가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혼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일자리를 약속받고 국경을 넘었다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결혼 이후에도 북한 여성들은 고립감을 느끼고, 언젠가 북송될까 두려움 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북한 신부가 필요한 이유는 뚜렷하다. 중국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약 3400만 명 많다. 과거 '한 자녀 정책'과 남아 선호로 성비가 크게 불균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BBC는 중국에 사는 북한 여성 4명과 중개인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들의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지난 20년간 인권단체들이 기록해온 수백 건의 증언과 유사했다.
이 여성들은 국경 인근 농촌 지역에 신분 없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살아간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16세 때 자신보다 거의 두 배 나이 많은 지금의 남편에게 팔려갔고, 남편은 그녀를 헛간에 감금하고 성폭력을 저지른 뒤 가족에게 약혼녀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15년째 중국에 살며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 여성들의 거주지를 알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경찰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잘 관리하라며, 도망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침, 지문, 얼굴 인식용 사진 등 생체 정보를 수집당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 주민 대량 유입을 피하려 하지만, 이 여성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방치하는 모습이다.
네 여성 모두 중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거의 행복하다"고 전했다.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리나 윤 선임연구원은 중국에 도착한 여성들이 "잔혹한 역설"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합법적 지위도, 안전도 없이 허가받지도 추방되지도 않은 채 통제와 방치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습니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 금성의 어머니가 구금된 사실은 이 체계를 벗어나려는 이들에게 어떤 일이 닥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금성은 어머니가 북송되는 것보다는 중국의 삶이 낫다고 말했다.
"엄마가 그냥 중국에 남아서 남편과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엄마를 북한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중국에 부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