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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주님' 김주애의 패션에 담긴 정치적 함의
- 기자, 한상미
- 기자, BBC 코리아
- 읽는 시간: 12 분
2022년 11월 거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옆에 하얀 패딩을 입고 나타난 한 아이가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다. 2013년생, 당시 만 9세로 알려졌다.
4년 여가 흐른 지금, 그 앳된 아이는 더 이상 없다. 주애는 어느 순간 명품 코트와 정제된 헤어스타일 그리고 성인 여성의 격식을 갖춘 전형적인 서구식 실루엣으로 대중 앞에 서기 시작했다.
주애의 변신은 단순한 성장 기록이 아니다. 북한 로동당 선전선동부가 치밀하게 설계한 '시각적 정치 프로파간다'의 화려한 부활이자, 의상을 매개로 한 북한의 차세대 권력 지도다.
명품 입는 '공주님'
주애는 북한에서 '공주님'으로 불린다.
한국으로 망명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책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금고-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딸과 사위 증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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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은 훗날 주애를 안고 찍은 기념사진을 집에 가져왔다. 나는 그때 김주애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사진 속 주애는 옛 일본식 교복인 세라복을 입고 있었고, 목에는 북한 소년단원들이 착용하는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장인이 직접 적은 '주애(主愛) 공주님과 함께'라는 문구가 있었다. 내가 이름의 뜻을 묻자, 장인은 "원수님께서 '만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예쁜 딸이 되라'는 의미에서 '주애'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책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금고-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딸과 사위 증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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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주애 이전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여정'이 공주님으로 불렸다고 한다.
류 전 대사대리는 "북한 고위 간부들은 김주애가 태어나기 전 일정 기간까지 김여정에게 '공주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김여정의 호칭이 '공주님'이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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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정 공주님이 결혼식을 했단다."
"어디서 했어요?"
"목란관."
"공주님은 누구와 결혼했나요? 신랑은 잘생겼나요?"
"공주님 남편이 미남이더라. 공주님과 김일성종합대학 동창이라고 하더라고."
(책 '김정은의 숨겨진 비밀금고-노동당 39호실장 전일춘 딸과 사위 증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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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답게 주애의 차림새는 남다르다.
2023년 4월 1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영상 속 주애는 검은색 외투를 입고 등장하는데 이 옷은 미화 1900달러 상당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다운 재킷으로 알려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BBC에 "명품 브랜드, 가죽 자켓, 모피 코트 등은 일반 북한 주민들은 입어보지 못하는 귀한 옷"이라며 "주애나 리설주가 서구적 디자인의 복장을 입으면서 일반 주민들과는 성분 자체가 다르다는 '차별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 체제 특성상 이러한 차별화 전략이 통치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애의 경우 상당히 어리기 때문에 후계자로 내세운다고 할 때 결점이 될 수 있다"면서 "나이를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주애에게 어머니 리설주가 입는 것과 같은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주민들, 특히 평양 거주 여성들이 이러한 주애의 세련된 패션을 열망하고 따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은이 한국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시대도 변했고 세대 교체도 많이 이뤄졌다"며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이후 외화벌이 차원에서 해외로 나간 노동자들이 대폭 늘었다"면서 "코로나 기간 중국에 체류한 노동자가 거의 20만명 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라고 했다.
이어 "그들이 평양으로 복귀하면서 그냥 간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도 함께 가져갔다"고 분석했다. 명품 브랜드들을 구체적으로 모를지언정, 세련된 서구식 스타일에 어느 정도는 눈을 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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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 공항에 가면 북한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는데 오히려 더 격하게 과시 소비를 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조 말론' 향수도 정말 많이 사가더라고요. 단둥 힐튼 호텔에 가보세요. 거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인 북한 사람들 많아요. 그러니까 주애의 패션을 따라하고 싶은 계층이 있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정은이 한국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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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이 실장은 "예전에는 명품 하면 재일 조선인들이 가져간 일본 브랜드 정도였지만,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꽤 다양한 브랜드를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며 "가방이나 옷은 가격이 부담되니 향수부터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것들이 보따리, 즉 밀수로 북한으로 대량 반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주애가 2024년 5월 14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평양 북쪽에 새로 마련된 전위거리 준공식에 참석했을 당시 입은 '시스루'도 큰 화제가 됐다.
아직 '어린이'인 주애가 이러한 어른 옷을 입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북한 사회에서 속살이 비치는 '시스루'는 말 그대로 '반동사상문화'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우영 북한대학교대학원 명예교수는 "북한에서 '청바지'는 서구식 패션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과거 김정은이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적이 있다"며 "아무리 외부 문물을 금지하고 법까지 제정했다고 하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심하면 못할 것이 없는 곳이 바로 북한"이라고 설명했다.
가죽 재킷을 입은 주애의 모습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정성장 부소장은 "군부대 등을 방문하면서 정장 치마를 입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상대적으로 좀 험한 장소에는 좀 캐주얼한 복장을 입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또 "북한 주민들에게 가죽 옷은 그렇게 많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면서 "고급 가죽으로 만든 복장을 하면서 특별한 지위를 과시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북한이 이러한 '시스루' 옷차림과 주애가 자주 하고 등장하는 '수탉머리' 스타일(윗머리는 띄우고 긴 머리카락은 반만 묶는)을 '반사회주의 현상'으로 규정하고 주민들에게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실제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주민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는 주민들의 생각과 생활 방식이 한국식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외부 문화 차단법'으로, 여기서의 옷차림은 단순히 패션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사상적 침투로 간주된다.
정성장 부소장은 "젊은 여성이 서구식의 세련된 복장으로 패션을 선도한다? 북한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그런 것들을 주애나 리설주가 신경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특권적인 지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청년 김일성의 환생?
이러한 '시각적 정치 프로파간다'는 결코 주애로부터 급작스럽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북한 권력 승계의 유구한 전통인 '이미지 복제'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과거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초기 할아버지 김일성의 중절모와 코트 스타일, 심지어 걸음걸이와 웃음소리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며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공주님'의 패션 역시 아버지를 투영함으로써 백두혈통의 영속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고도의 정치적 연출"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부소장은 "북한 주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바로 김일성"이라며 "신격화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주민들이 절대적으로 따르는 존재였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처음 등장했을 때 보여준 이미지가 김일성과 상당히 비슷했고 헤어스타일 역시 1945년 해방 직후 김일성을 연상케 했다"며 "이는 김정은의 모습이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주민들로 하여금 청년 김일성을 떠오르게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이 자연스레 김정은에게 이전되도록 일련의 과정을 이끌어내는 데 북한 선전선동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 부소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북한 선전선동부의 계획은 의도대로 성공했을까?
정 부소장은 "김정은이 처음 등장을 했을 때 북한 주민들도 놀랐다고 한다. 한국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랐던 이유는 처음 보는 김정은의 모습이 청년 김일성과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일성이 환생했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라며 "어린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가졌던 경험 부족, 나이 등의 한계가 김일성을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쇄될 수 있었다"고 정성장 부소장은 평가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권력을 승계하며 집권을 시작한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로 집권 16년차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