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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총선 임박…오르반 16년 연속 장기 집권 막 내리나
- 기자, 폴 커비
- 기자, BBC 유럽 디지털 에디터
- 읽는 시간: 6 분
헝가리 유권자들이 4일(현지시간) 총선 투표에 나선다. 이번 선거는 장기 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를 퇴진시킬 수 있는 분수령이 될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러시아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집권 여당 피데스당을 탈당해 풀뿌리 정당을 창당한 페테르 머저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투표를 하루 앞두고 오르반 총리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부다페스트 성 언덕의 한 광장에서 수천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모두를 놀라게 할, 어쩌면 우리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투표는 현지시간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되며, 개표 결과는 저녁부터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다.
오르반 총리는 투표를 앞두고 긴장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며 야권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머저르는 유권자들에게 "피데스당의 압박과 협박에 굴복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유럽의회가 '선거 권위주의의 혼합 체제'로 규정한 통치 방식 아래 오르반이 16년간 헝가리를 이끌어온 가운데, 머저르와 그의 티서당은 '정권 교체'를 내걸고 유럽연합(EU)과의 관계 재정립,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 단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머저르는 제2 도시 데브레첸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오르반의 유세보다 훨씬 많은 인파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오르반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헝가리 유권자들에게 "나의 진정한 친구이자 투사, 승자인 인물을 위해 투표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오르반 총리는 11일 밤 지지자들 앞 연설에서도 브뤼셀과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기존 선거 메시지를 이어갔다. 그는 "우리의 아이도, 우리의 무기도, 우리의 돈도 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메시지는 군중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지지자들은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겠다"고 외쳤다. 한 지지자 요한나는 가족 보호 정책과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과 관련한 그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네 차례 연속 선거에서 승리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지만, 다섯 번째 연속 승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는 데다, 페테르 시야르토 외무장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전후로 러시아 외무장관과 정기적으로 접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등 잇따른 스캔들로 타격을 입었다. 해당 사실은 본인도 인정했다.
헝가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일 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속해 있지만,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900억 유로(약 138조 원) 규모의 지원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유럽 파트너들의 반발을 샀다.
헝가리 주요 여론조사기관 3곳 모두에서 머저르가 이끄는 티서당이 "큰 격차로 앞서고 있다"고 부다페스트 싱크탱크 '폴리티컬 캐피털'의 선거 전문가 로베르트 라슬로는 분석했다. 그는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집권 여당 피데스당이 격차를 줄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런 흐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머저르는 유권자들에게 199석 의회에서 과반인 100석 확보에 그치지 않고, 사법부 독립과 언론 소유 구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피데스당이 추진한 헌법 개정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3분의 2에 해당하는 '슈퍼 과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헝가리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 지속적으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라슬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티서당이 안정적인 과반을 확보하되, 3분의 2 의석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3분의 2 확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경찰과 군, 기업계 인사들까지 잇따라 피데스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라슬로는 이를 두고 민심이 오르반 총리에게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헝가리의 선거 제도는 비교적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전체 199석 가운데 106석은 지역구에서 직접 선출되며, 나머지 93석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로 배분된다. 이 비례대표 투표에는 해외 거주 헝가리인도 참여할 수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낙선한 후보가 속한 정당의 표가 정당 명부 득표로 이전되며, 당선된 후보의 잔여 표 역시 정당 명부로 반영된다. 이러한 방식은 그동안 피데스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전국 득표율 5%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현행 선거 제도가 자신의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오르반의 승리 가능성을 점치는 몇 안 되는 여론조사기관 중 하나인 네죄포인트 연구소의 머라츠 아고스톤 소장은 전체 106개 지역구 가운데 이른바 '격전지'로 꼽히는 22개 의석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피데스당이 이들 지역구에서 승리할 경우 최종 승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해당 지역구 표의 약 5%가 즉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이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피데스당 지지층이 티서당 지지층만큼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머라츠 소장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일반적으로 열정이 덜하거나 자신감이 낮은 편이다. 이들은 이른바 '숨은 표'로 분류되며, 여론조사 응답에도 적극적이지 않다"며 "피데스당 지지층에는 티서당보다 블루칼라 유권자의 비중이 더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머저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티서당이 주요 도시에서 피데스당을 꺾어야 한다. 특히 북서부 슬로바키아 국경 인근에 위치한 헝가리 제6의 도시 죄르가 중요한 승부처로 꼽힌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달 이곳 죄르를 선거의 핵심 지역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시위대의 야유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이들을 향해 "우크라이나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머저르는 지난주 9일 죄르 중심 광장에서 대규모 유세를 열었다.
어머니와 함께 광장을 찾았다는 20세 대학생 게르게이 네메트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오르반 정부의 친가족 정책에 따라 두 자녀 이상을 둔 어머니들에게 소득세 면제 혜택이 확대되고 있지만, 모든 가정이 그 혜택을 체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BBC와 인터뷰한 많은 첫 투표 유권자들처럼 네메트 역시 가장 중요한 과제로 피데스당을 꺾는 것을 꼽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페테르 머저르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의회에 있는 이 정치인들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죄르는 지난 2년간 무소속 시장과 부시장이 시정을 이끌어왔지만, 시의회에서는 여전히 피데스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롤란드 코샤 부시장은 권력에 대한 오만함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당선된 이후, 선거 전후를 막론하고 피데스당은 우리를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했다"며 "이 도시는 여전히 그들의 것이고, 이 나라도 여전히 그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코샤 부시장은 피데스당에 맞서는 올바른 방식은 기존 정당 정치의 틀을 벗어나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머저르는 오르반 정권 아래에서 중도우파 보수 정치인으로 정치 경력을 쌓았지만, 2년 전 돌연 당과 결별하며 노선을 바꿨다. 이후 그는 정치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친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머저르를 선호하지 않는 유권자들조차도, 보다 폭넓은 정치적 연합을 지지한다는 인식 아래 그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머저르는 다른 정당과 연대하지 않기로 의도적인 결정을 내리고, '티서섬'이라 불리는 조직을 통해 바닥부터 티서당을 구축해왔다. 이는 피데스당 강세 지역 속에 소규모 활동가 그룹을 곳곳에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며, 오르반 역시 과거 야권 시절 '시민 서클'을 조직하며 유사한 전략을 사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섬'들은 전국적 정치 운동의 기반으로 자리 잡았고, 머저르 선거 캠페인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머저르가 내세운 후보들은 기존 정치인이 아닌 외과 전문의, 교사, 기업인 등으로, 지역 사회와 헝가리 의료·교육 문제를 잘 이해하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 선거는 통상적인 유럽 선거의 마지막 국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두 후보는 TV 토론에 나서지 않았으며, 대신 선거전은 소셜미디어와 거리 유세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피데스당 관계자들은 겉으로는 여전히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오르반 총리의 정치 고문인 발라즈 오르반은 승리할 경우 야권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머라츠 아고스톤 역시 티서당 지지층이 오르반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선거 부정을 주장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거리 폭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우려된다"며 "모든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이 거리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10일 밤 부다페스트 영웅광장에서 최소 10만 명이 참석한 반(反)피데스 콘서트에서는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머저르는 지지자들에게 "어떠한 도발에도 휘말리지 말라"고 당부했다.